2009년 1월 21일 수요일

팜 파탈- 숙명의 여인(클림트작품)

치명적 유혹-팜파탈

당시에 처한 상황이나 감정이 그림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고독할 때는 호퍼, 행복할 때는 르누아르, 고통을 겪을 때는 베이컨, 아름다운 자연풍경 속에서는 모네의 그림이 단연 최고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에는 클림트의 그림이 온통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마도 2월 2일부터 5월 15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되는 클림트 전시회를 고대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클림트의 열혈 팬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미술애호가는 물론 미술과 거리가 먼 사람들마저 클림트전을 화제로 삼을 정도이니 말이다. 클림트의 그림은 왜 그토록 인기가 높을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에로티시즘을 예술로 승화클림트는 인간의 숨겨진 본능인 에로티시즘을 예술로 승화한 거장이기 때문이다. 클림트의 시절, 세기말적 증후군인 불안에 감염된 유럽인들은 삶의 허망함과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성적 쾌락에 탐닉했다. 이런 시대 분위기는 클림트의 예술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는 성과 죽음, 탄생과 소멸이 삶의 본질이라고 믿게 되었으며, 그런 자신의 신념을 여성의 매혹적인 육체를 빌려 표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클림트는 자칫 퇴폐적이거나 선정적으로 전락할 수 있는 주제인 에로티시즘을 신비의 영역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관능과 성스러움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이종교배한 이른바 클림트표 화풍인 황금양식을 개발했다. 황금양식이란 화면을 황금빛 색채로 물들이고, 인물의 의상을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하고, 사치스러운 금박 은박 등의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한 화풍을 가리킨다. 관능미를 독창적인 화풍에 절묘하게 결합한 덕분에 그는 에로틱 회화의 신천지를 개척할 수 있었다. 클림트가 미술사에 선물한 또 다른 업적을 소개한다면, 팜 파탈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황금양식으로 신천지 개척


팜 파탈(femme fatale)이란 ‘숙명의 여인’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섹시함을 미끼삼아 남성을 유혹하고 파멸시키는 요부를 가리킨다. 당시 유럽예술가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악녀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예술가들은 살롱이나 카페에서 신종 요부인 팜 파탈을 단골주제로 삼아 열띤 토론을 벌였고, 팜 파탈을 우상처럼 숭배했다. 세기말 몬스터에 매료된 숱한 화가들이 경쟁적으로 요부를 그림에 선보였지만 그 누구도 클림트처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팜 파탈을 창조하지 못했다. 클림트가 창조한 팜 파탈은 불멸의 존재가 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 드라마, 소설, 광고의 꽃인 천사표 여성들을 위협하고 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클림트전에서 ‘유디트 Ⅰ’을 감상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면 두려움은 성적 욕망에 기름을 붓고, 욕정은 억압할수록 강렬해지며, 남성은 순종적인 여성보다 위험한 여성에게 매혹당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통섭<~>

통섭

통섭 (統攝,Consilience)은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본질적 질서를 논리적 성찰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두 관점은 그리스시대에는 하나였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점차 분화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편 통섭 이론의 연구 방향의 반대로, 전체를 각각의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는 환원주의도 있다.

1840년에 윌리엄 휘웰은 귀납적 과학이라는 책에서 "Consilience"란 말을 처음 사용했는데, 설명의 공통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통섭의 귀납적 결론은 사실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분야를 통한 결론에 의해 얻어진 귀납적 결론이 또 다른 분야에 의해 얻어진 결과와 일치 할때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통섭은 어떤 것에 대해 발생한 사실을 해석하는 이론들을 검증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귀납적 결론이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야만 통섭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현대적 관점으로 볼때 각 지식의 분야들은 각각의 연구분야의 활동에서 얻어진 사실들에 기반하여 연구하여 이해하고자하는 학문들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연구분야의 활동에 의존하는 면이 크다.

예를 들어 원자물리학화학과 관련이 깊으며 화학은 또한 생물학과 관련이 깊다. 물리학을 이해하는 것 또한 신경과학이나 사회학,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된다. 이렇듯 각 분야의 다양한 접합과 연관은 이루어져 왔다.

[편집] 통섭 연구 학자
통섭이란 말은 20세기말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1998년 저서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통해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생물학>(1975년)을 저술한 인본주의적 생물학자로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간격을 매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또한 C.P 스노우의 1959년 작 <두 문화와 과학 혁명>에서도 다루어진 바가 있다. 윌슨은 과학, 인문학과 예술이 사실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분리된 각 학문의 세세한 부분을 체계화시키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

모든 탐구자에게 그저 보여지는 상태뿐만이 아닌 깊이 숨겨진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간단한 자연의 법칙들로 설명하고자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반대방향으로 연구하지만 오히려 환원주의에서 추구하는 것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윌슨의 제자인 이화여대의 최재천교수가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번역하여 한국에 통섭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하였다. 통섭이라는 단어는 성리학과 불교에서 이미 사용되어온 용어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뜻을 지닌다.

한편 상지대의 최종덕 교수는 한국 의철학회에서는 통섭이 마치 학문간 동등하고 상호적이며 양방향적 관점의 합일로 오해하게 하고 있으나 원래 윌슨의 개념은 인문학이 자연과학에 흡수되는 통합을 의미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2006년 창립된 한국 의철학회는 의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학문과 실천과 덕성으로 구성된 의(醫)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하고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2009년 1월 19일 월요일

경제는 균형이 아니라 진화"
"두려움의 진화가 現 글로벌 경제위기 불러…균형 정상으로 치는 '뉴턴표 경제학'은 한계변수·선택 강조하는 '다윈표 경제학' 뜰 때"
올해는 19세기 생물학자 찰스 다윈(Darwin·1809~1882)의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출간 150주년을 맞는 해다. 다윈의 진화론을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국내 학자들의 모임 '다윈 포럼'이 '다윈이 돌아왔다' 시리즈를 주간 연재한다. 지난 1일자의 첫 회 '21세기에 되살아나는 다윈'에 이어 제2회 '다윈과 경제'를 싣는다. 다윈과 경제: 경제 위기의 순간에 다윈을 찾다 세계경제가 위기다. 서브프라임 부실의 충격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침체의 나락에 빠져들고 있다. 그냥 놔두면 시장경제는 알아서 잘 작동할 것이라던 믿음이 깨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놀라며 당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경제에서 위기와 급변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1929년 대공황 이래 지난 세기에만 우리는 세계경제의 위기상황을 이미 여러 차례 겪었다. 문제는 기존의 경제학이 이러한 경제현실을 설명하는 데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것이다. 그 훌륭한 경제학자 중 누구도 이들 사태를 예상하지도 못했고 그들의 경제 원리를 가지고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도 못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은 1970년대 세계경제가 오일쇼크로 인한 위기에 빠져들었을 때 '경제학의 위기'를 외쳤는데 30여년 만에 또다시 경제학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균형에 관한 헛된 믿음을 버려라
기존 신고전파 경제학이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근본이유는 그것이 뉴턴 역학에 입각한 기계론적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뉴턴표(標)' 경제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뉴턴 역학의 체계를 차용하고 있다. 이는 균형을 정상상태로 생각한다. 경제는 스스로 조절하며 마찰 없이 돌아가는 '자동제어장치' 같아서 항상 균형 상태에 있으며, 외부 충격에 의해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상쇄하는 힘의 작용에 의해 다시 균형으로 회귀한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내생적인 불안정성이나 급격한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현실은 경제학이 그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다양성의 확대와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출현',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격변의 소용돌이',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경제 현실이다. '뉴턴표' 경제학으로는 이러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이제 경제학은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변화를 정상 상태로 하는 경제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의 경제현실을 보면서 다윈을 다시 찾는 이유이다
◆슘페터, 베블렌이 생각한 경제 속의 진화다윈은 변이와 선별, 이 두 가지 간단한 개념의 결합을 통해 진화의 메커니즘을 밝혔다. 비록 다윈은 자신의 개념을 생물의 진화에 적용하였지만 이 원리는 생물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개념을 확장하면 세계의 보편적인 변화 원리가 될 수 있으며 경제에도 훌륭히 적용될 수 있다. 《부의 기원》(2007)을 쓴 바인하커(E. Beinhocker)는 진화야말로 "세계의 모든 질서,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을 설명해 주는 공식"이라고 하였다. 경제현실에서 변이는 새로움의 지속적 창출을 의미하고 선별은 변화의 누적적 증폭 과정을 의미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의 내생적 변화는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이것이 누적적 증폭 과정을 통해 확산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창조적 파괴'를 강조한 슘페터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누적적 변화'를 강조한 베블렌 등은 진화론적 관점을 경제학에 도입하려고 노력했던 20세기 초의 경제학자들이었다.
◆경제는 두려움 때문에 진화한다?금번 경제위기도 진화 패러다임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이는 작은 국지적 요동이 누적적 증폭과정을 통해 확산된 것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대출자의 연체가 금융기관의 연쇄적인 부실로 이어졌다. 금융기관의 대출 중단과 회수는 자산의 가격을 떨어뜨리고 이것이 자금 사정을 악화시켜 대출 중단 및 회수 행동을 더욱 강화시킨다. 가계와 기업 역시 지출을 줄이면 고용과 이윤을 감소시키고 이것이 다시 지출 축소 행동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야말로 두려움이 현실을 악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두려움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한쪽 방향으로 선별이 일어나 그것을 확산시킴으로써 글로벌 경제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경제는 갈수록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급변이 빈발하고 있다. '뉴턴표' 경제학은 이제 그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진화론이야말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설명하는 적합한 패러다임이다. 이것이 경제위기의 순간에 다윈을 찾는 이유이다. 이제는 경제학의 기초에 진화론이 들어와야 한다.

2008년 12월 20일 토요일

나비효과의 프랙털이란^#^

프랙털이란
1. 프랙털과 Scale
<영국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인가?>
폴란드 출신의 미국의 응용수학자 만델브로는 해안선과 구불구불한 국경선에 의문을 느끼면서 여러 백과 사전을 검토한 결과, 약 20%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사실 해안선의 길이는 측정하는 자의 길이에 따라 달라진다. 다음 그림을 보자.
<코흐곡선>
언뜻 보기에 이 질문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지도와 자가 있다면 여러분은 앉아서도 곧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해안으로 나가서 직접 측량을 한다면 더 큰 값을 얻을 것이다. 더욱이 측량하는 자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더 큰 결과를 얻게될 것이다.
`프랙털'이란 용어는 자신의 저서 "자연의 프랙털 기하학"에서 위의 간단한 질문을 통해 인간이 가진 직관적 인식과 차원의 개념에 대하여 심오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만일 원과 같이 매끄러운 곡선이라면 우리는 원주의 길이를 알고 있다. 이다. 원의 내부에 접하는 다각형을 이용하여 원주의 근사치를 구해갈 수도 있다. 이때 다각형의 한 변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면, 즉 4각형->8각형->16각형으로 증가하면 이렇게 다각형의 변의 길이의 합으로 구한 것을 '파이 이야기'에서 보았다.
그러나 원모양의 곡선과 해안선과 같은 곡선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해안선의 수많은 굴곡, 강, 바위들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긴 측량단위는 이들의 굴곡들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간다. 이보다 짧은 측량단위는 구부러진 형태들을 고려하기에 전체길이가 증가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측량의 단위를 작게 할수록 곡선의 길이가 증가한다면 이러한 곡선을 프랙털 곡선이라 부를 수 있다. 여러분의 손지갑에 들어있는 티슈를 찢어서 그 찢어진 선을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만델브로는 측정단위가 작아짐에 따라 해안선의 길이는 한없이 커짐을 발견하였다.길이, 깊이, 두께 등을 측정하는 유클리드식 측정 방법으로는 불규칙한 현상의 본질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만델브로는 다른 생각, 즉 차원이라는 개념으로 관심을 돌렸다.
2. 꼬인 실뭉치는 몇차원인가?
만델브로는 그것이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했다. 먼 거리에서 보면 실뭉치는 0차원의 접으로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실뭉치는 구를 채우고 있는 3차원으로 보인다. 더 가까이서 보면 꼬인 실이 보이는데, 1차원의 실이 차원 공간속에 뒤엉켜 있긴 하지만, 1차원 물체이다. 만델브로는 수학자답지 않게 상대성에 호소하였다. 물론 이 주장의 약점은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라는 불분명한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차원 전환에 나타나는 모호한 성격은 그러나 약점이 아니라 차원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태동시켰다.
<힐버트의 곡선>
힐버트의 곡선은 직선으로 평면을 채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연 이 평면을 채우는 직선의 차원은 얼마인가?
3.소수차원
만델브로는 0,1,2,3,... 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소수 차원을 생각했다. 그는 수학자들의 오래된 차원의 정의를 참조하여 소수차원을 만들어 냈다. 만델브로는 위의 코흐 곡선의 차원이 1.2618 임을 정확히 계산했다.소수차원은, 달리는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성질, 즉 어떤 물체의 거칠거칠한 정도, 혹은 부서진 정도, 혹은 불규칙한 정도를 측정하는 방법이 된다.
그리고 이는 프랙털 차원(fractal dimens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4. 자연 속의 프랙털의 예
우리 주위는 프랙털 구조가 도처에 존재한다. 인간의 순환기, 산, 구름, 나뭇가지, 양치류, 날씨 등이 모두 그러한 예이다.
5. 프랙털의 특징
-자기 유사성(self similarity)
위에서 제시한 예들은 작은 부분을 선택하여 확대하면(zoom up) 전체의 구조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무한전한 가지치기(infinite branching)
-모든 영역에서 복잡한 구조
 

2008년 12월 19일 금요일

울림의 소통(共鳴)


노을지는 언덕받이에서 솔산한 바람이 불며
운무에 반사된 돌아가는 만상들의 떨림을 느낀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밀려오는 진중한 울림이
어느 새 폐속 깊숙히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심연에 잠긴 처연한 한 빛마저 사그러 들때
산란스런 한 점의 자태마저 소스란히 묻혀 버린다

태초는 언제부터 였는가?
얼마 만의 나 였는가?

모른다...

막연함에서 울림이 온다
온통 공명(共鳴)되어 純맥질이 시작되나 보다

그렇다...

초연함의 공명이 울림의 실천소통이로다.


修行- 절로 純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카오스이론.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가 처음으로 발표한 이론이지만 나중에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이론은 로렌츠가 〈결정론적인 비주기적 유동 Deterministic Nonperiodic Flow〉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결정론적 카오스(Deterministic Chaos)의 개념을 일깨운 새로운 유형의 과학 이론이었다. 로렌츠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기상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결국 그 결과에 엄청나게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나비효과는 이렇듯 처음에는 과학이론에서 발전했으나 점차 경제학과 일반 사회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가령 1930년대의 대공황이 미국의 어느 시골 은행의 부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이것은 나비효과의 한 예가 되는 것이다. 또한 1달 후나 1년 후의 정확한 기상예보가 불가능하듯이 주식이나 경기의 장기적인 예측이 불가능한 것도 이러한 나비효과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카오스 이론을 가장 잘 요약해 주는 동양의 두 경전의 어구들이 있기에 이것으로 들어가는 말을 대신하고자 한다.一中多 多中一 하나에 모두 있고 많은 데 하나 있어 一卽多 多卽一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이니 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작은 속에 세계를 머금었고 一切塵中亦如是 낱낱의 티끌마다 세계가 다 들었네. 無量遠劫卽一念 한 없이 긴 시간이 한 생각 찰나이고 一念卽是無量劫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긴 겁이네 <法性偈>'남해에 임금이 있어 그 이름을 숙( )이라고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忽)이라하고 중앙의 임금을 혼돈(渾沌)이라 하였다. 언젠가 숙과 홀이 혼돈을 찾아가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숙과 홀은 혼돈에게서 받은 대접에 감격하여 진심으로 그 은혜를 갚고자 했다. '사람에게 이목구비 일곱 구멍이 있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 묘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입, 편히 숨쉬고 잘 수 있는 코가 그것이다. 혼돈에게 홀로 이런 것이 없으니 우리가 힘을 합해 뚫어 줍시다.' 두 임금이 힘을 합하여 혼돈에게 매일 한 구멍씩 구멍을 뚫어 갔다. 마지막 이레 되는 날에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이 완성되자 혼돈이 죽고 말았다.'
카오스 이론을 필두로 등장하기 시작한 현대 과학의 이론들은 종래의 과학 패러다임 자체를 변혁시키며 인류의 지적 영역을 확대해 왔다. 카오스 이론이란 그동안 무시해왔던 불규칙한 현상의 배후에 있는 규칙성을 찾는 이론으로, 흔히 북경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의 효과로 상징되어지곤 한다. 그러나 카오스 이론의 등장은 어쩌면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있다. 일찍이 동양의 노자와 장자, 그리고 석가모니가 설파한 불교 사상 속에 카오스 이론을 비롯한 현대 과학의 중요한 개념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 수학계의 거장이자 오랫동안 카오스 이론과 불교 사상을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동양 사상과 현대 과학으로 이어지는 서양 철학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살피면서, 앞으로의 과학 문명이 이끌어나갈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 구상하고 있다. 이 책 속에 흐르는 불교의 사상은 모든 현상에는 본질이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하나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곧 하나라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그리고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해가므로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철학이다. 이는 20세기의 과학이 절대성, 완전성, 확정성, 명백성을 부정하면서 상대성, 변화, 무아(無我)의 개념으로 이어지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가령 카오스 이론의 특징 중 하나인 프랙털은 전체 속의 어느 한 부분이 곧 전체임을 나타내는데,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문명의 역사를 살펴보며, 석가모니, 탈레스, 피타고라스, 뉴턴, 데카르트, 스피노자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사유를 소개한다. 불교와 과학을 접합하는 독특한 시도 속에서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에 관한 성찰을 얻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저자
김용운 -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 미국 어번 대학원(M.S.), 캐나타 앨버타 대학원(Ph. D.)을 졸업하였다.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 조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일본 고베 대학과 도쿄 대학, 일본 국제문화 연구센터 등의 객원 교수, 수학사학회 회장, 한양대학교 대학원장을 지냈다. 현재는 수학문화연구소 소장이며 한양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지은책으로 <인간학으로서의 수학>, <일본의 몰락>, <한일 민족의 원형>, <일본인과 한국인의 의식구조>, <한국수학사>, <카타스트로피 이론 입문>, <재미있는 수학여행>, <프랙탈과 카오스의 세계>, <초학습법>, <원형의 유혹>, <수학사대전>, <수학서설>, <수학사의 이해>, <문화로 배우는 이야기 일본어>, <제2건국론> 등이 있다. 한국 출판문화상과 서울시 문화상, 대한수학회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이 사람 정말 재주꾼이네! - 찌리릿 나도 이 사람처럼 잘 좀 했으면 좋겠다. - 기스 이 사람 순 요리 사기꾼이다. - 대방동주방장 -->
저자의 말
절대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교 사상, 절대 진리의 존재를 내세우는 철학, 이 두 영역을 넘나들면서 드디어 카오스 이론과 불교의 공통 영역인 생명 패러다임을 구상하게 되었다.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때를 맞추어 등장한 카오스 이론을 태어나서 성장하고 사멸해 가는 모든 생명 현상에 나타나는 복잡한 과정을 과학의 눈으로 파악하는 일을 통해 불교와 만나 생명 패러다임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종전의 물질 중심의 기계론 또는 요소환원주의 세계관이 맞서 살아 숨쉬는 생명 현상을 중심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카오스 이론이 평생 수학의 곁에서 불교 사상을 접해 온 필자의 지적 편력을 반추하는 마지막 영역이 되었다. 카오스와 불교는 한결같이 연기(緣起)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수학은 본래 유클리드 기하로 상징되고 공리주의에서 출발했으나, 이제 공리를 무시하고 생명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파헤치는 카오스 이론에 당도한 것이다. 현상 간의 상호작용은 곧 연기이며 개인이 전체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역으로 전체가 개인의 존재를 규정짓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불교적 세계관과 맥을 같이 한다. 말하자면 이러한 카오스 이론을 통해 비로소 동서양 만남의 장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동양 사상과 현대 과학으로 이어지는 서양 철학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살피고, 21세기의 새로운 지(知)의 세계를 구상하고자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양 근대과학 사상의 원류로서의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과 피타고라스(수학 사상의 원류)를 더듬고 불교 사상과의 근본 차이를 생각한다.
카오스적 수학과 불교적 수학의 기본적인 공통점(삼체문제와 연기 사상)
카오스의 자기조직과 노장자의 무위자연과의 비교
불교적 업과 카오스의 되먹임
불교의 <일즉다 다즉일>과 카오스의 프랙탈
상대주의와 패러다임론
현대 심리학, 양자역학, 유신론의 관계를 신비주의를 초월하는 연기계와 연기파의 입장에서 논한다.
생명 패러다임을 요청하는 시대적 상황
생명 패러다임에서 보는 학문 영역과 동서 철학, 그리고 인류의 미래 - 김용운(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