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1일 수요일

팜 파탈- 숙명의 여인(클림트작품)

치명적 유혹-팜파탈

당시에 처한 상황이나 감정이 그림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고독할 때는 호퍼, 행복할 때는 르누아르, 고통을 겪을 때는 베이컨, 아름다운 자연풍경 속에서는 모네의 그림이 단연 최고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에는 클림트의 그림이 온통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마도 2월 2일부터 5월 15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되는 클림트 전시회를 고대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클림트의 열혈 팬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미술애호가는 물론 미술과 거리가 먼 사람들마저 클림트전을 화제로 삼을 정도이니 말이다. 클림트의 그림은 왜 그토록 인기가 높을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에로티시즘을 예술로 승화클림트는 인간의 숨겨진 본능인 에로티시즘을 예술로 승화한 거장이기 때문이다. 클림트의 시절, 세기말적 증후군인 불안에 감염된 유럽인들은 삶의 허망함과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성적 쾌락에 탐닉했다. 이런 시대 분위기는 클림트의 예술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는 성과 죽음, 탄생과 소멸이 삶의 본질이라고 믿게 되었으며, 그런 자신의 신념을 여성의 매혹적인 육체를 빌려 표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클림트는 자칫 퇴폐적이거나 선정적으로 전락할 수 있는 주제인 에로티시즘을 신비의 영역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관능과 성스러움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이종교배한 이른바 클림트표 화풍인 황금양식을 개발했다. 황금양식이란 화면을 황금빛 색채로 물들이고, 인물의 의상을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하고, 사치스러운 금박 은박 등의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한 화풍을 가리킨다. 관능미를 독창적인 화풍에 절묘하게 결합한 덕분에 그는 에로틱 회화의 신천지를 개척할 수 있었다. 클림트가 미술사에 선물한 또 다른 업적을 소개한다면, 팜 파탈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황금양식으로 신천지 개척


팜 파탈(femme fatale)이란 ‘숙명의 여인’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섹시함을 미끼삼아 남성을 유혹하고 파멸시키는 요부를 가리킨다. 당시 유럽예술가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악녀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예술가들은 살롱이나 카페에서 신종 요부인 팜 파탈을 단골주제로 삼아 열띤 토론을 벌였고, 팜 파탈을 우상처럼 숭배했다. 세기말 몬스터에 매료된 숱한 화가들이 경쟁적으로 요부를 그림에 선보였지만 그 누구도 클림트처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팜 파탈을 창조하지 못했다. 클림트가 창조한 팜 파탈은 불멸의 존재가 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 드라마, 소설, 광고의 꽃인 천사표 여성들을 위협하고 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클림트전에서 ‘유디트 Ⅰ’을 감상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면 두려움은 성적 욕망에 기름을 붓고, 욕정은 억압할수록 강렬해지며, 남성은 순종적인 여성보다 위험한 여성에게 매혹당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통섭<~>

통섭

통섭 (統攝,Consilience)은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본질적 질서를 논리적 성찰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두 관점은 그리스시대에는 하나였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점차 분화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편 통섭 이론의 연구 방향의 반대로, 전체를 각각의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는 환원주의도 있다.

1840년에 윌리엄 휘웰은 귀납적 과학이라는 책에서 "Consilience"란 말을 처음 사용했는데, 설명의 공통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통섭의 귀납적 결론은 사실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분야를 통한 결론에 의해 얻어진 귀납적 결론이 또 다른 분야에 의해 얻어진 결과와 일치 할때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통섭은 어떤 것에 대해 발생한 사실을 해석하는 이론들을 검증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귀납적 결론이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야만 통섭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현대적 관점으로 볼때 각 지식의 분야들은 각각의 연구분야의 활동에서 얻어진 사실들에 기반하여 연구하여 이해하고자하는 학문들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연구분야의 활동에 의존하는 면이 크다.

예를 들어 원자물리학화학과 관련이 깊으며 화학은 또한 생물학과 관련이 깊다. 물리학을 이해하는 것 또한 신경과학이나 사회학,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된다. 이렇듯 각 분야의 다양한 접합과 연관은 이루어져 왔다.

[편집] 통섭 연구 학자
통섭이란 말은 20세기말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1998년 저서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통해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생물학>(1975년)을 저술한 인본주의적 생물학자로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간격을 매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또한 C.P 스노우의 1959년 작 <두 문화와 과학 혁명>에서도 다루어진 바가 있다. 윌슨은 과학, 인문학과 예술이 사실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분리된 각 학문의 세세한 부분을 체계화시키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

모든 탐구자에게 그저 보여지는 상태뿐만이 아닌 깊이 숨겨진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간단한 자연의 법칙들로 설명하고자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반대방향으로 연구하지만 오히려 환원주의에서 추구하는 것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윌슨의 제자인 이화여대의 최재천교수가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번역하여 한국에 통섭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하였다. 통섭이라는 단어는 성리학과 불교에서 이미 사용되어온 용어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뜻을 지닌다.

한편 상지대의 최종덕 교수는 한국 의철학회에서는 통섭이 마치 학문간 동등하고 상호적이며 양방향적 관점의 합일로 오해하게 하고 있으나 원래 윌슨의 개념은 인문학이 자연과학에 흡수되는 통합을 의미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2006년 창립된 한국 의철학회는 의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학문과 실천과 덕성으로 구성된 의(醫)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하고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